다니는 차 하나 없고 무서울 만큼 인적 없는 적막한 도로와 바다, 멀리 펼쳐져 있는 검은 돌무리는 새벽인데도 을씨년스러운 면이 있었다.
아 몰랑 제주 여행기_10_셋째 날은 함덕에서
하루쯤은 그동안 가 보지 않았던 곳에서 숙박하고 싶었다. 내일이면 여행도 끝이 나고 슬슬 제주공항 근처로 이동해야 할 때기도 했다. 셋째 날은 함덕해수욕장 근처에서 숙소를 잡자 말하고 여기저기 숙박시설을 검색하다가 찾은 곳이 '제주 메이더카라반'이었다.
카라반을 본 적이라고는 캠핑 관련 박람회에서 구경할 때 잠깐뿐이었다. 하루 카라반에서 머물러 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 바로 예약했다.
👉 제주 메이더카라반
우리는 지는 해의 노란빛에 반사하며 흩날리는, 길고 가는 풀숲을 뒤로하고 섭지코지를 출발했다. 주차장에서 예약해 둔 곳의 주소를 입력하고 다시 해지는 해안가를 달렸다.
꽤 깊숙이 들어온 것 같다. 예약 사이트에서 본 이미지에는 바다가 보이는 것 같이 보여서, 해안가에 위치해 있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함덕 해수욕장에서는 많이 떨어져 있어서 도보로 오가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주차를 하고 안내 데스크에서 키를 받아 들었다. 차에서 짐을 내려 카라반으로 옮겨두고, 안내해 주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며 한참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둘러봤다. 카라반은 사진으로 본 것보다 많이 낡았고, 특히나 화장실은 매우 불편했다. 그래도 밖의 잘 조성된 조경이 창문으로 보여, 캠핑카를 운전해 숲에 들어와 머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기도 했다. 뭐...... 하루 묵는데 좀 낡고 불편하면 어떤가. 이런 것도 추억이지.
짐을 방안에 올려놓고 나서 숙소 주위를 둘러봤다. 숙소 앞 도로를 건너면 바다가 있기는 해서 그래도 사람이 꽤 다니는 통로이지 않을까 했는데, 앞으로 한참을 걸어 나오면 정말 정말 정말 인적 하나 없는 공허한 검은 바다가 보였다. 이런 적막한 바다가 보고 싶기는 했지만 막상 검은 돌과 밟아주는 사람이 없어 마구잡이로 자란 거친 풀 사이에 서니 좀 무섭기도 했다. 숙소를 예약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풍경이 많이 달랐다.
얼른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숙소의 다른 호실에 머무는 사람들은 카라반 앞의 나무 벤치에서 바비큐를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기 냄새가 솔솔 흘러 들어오니까 배만 더 고파졌다. 우리도 이왕 온 거 주변 마트에서 고기를 사서 구워 먹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상을 차리고, 굽고, 또 치우는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 그냥 함덕 해수욕장의 번화가로 가 한 끼 해결하고 겸사겸사 구경도 하고 들어오자고 결정했다.
제주 메이더카라반 관련 정보는 여기에 있어요!
👉 버거307 제주함덕점
차를 타고 나오니 여기는 협재보다 더 주변 상가나 바다 앞의 거리 조성이 잘 되어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오는 곳인가 보다.
오늘도 밤이 늦어 나왔더니 문을 닫은 매장이 많았다. 제주도는 정말 일찍들 문을 닫는 것 같다. 해안가를 따라 꽤 길게 프랜차이즈며, 기념품 가게와 지역 음식점이 죽 늘어져있다. 한참을 걸어 다니며 구경하다가 해안가 저 끝 쪽에 있는 수제버거 가게가 눈에 띄었다. 그전에 무슨 제주 여행 관련 블로그에서 많이 본 유명한 김밥 체인점도 보였지만 김밥을 그 돈을 주고 먹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다 아는 김밥 맛이겠지 하며 지나갔다. 그리고 또 몇 번 더 그런 집들을 비슷한 생각으로 스쳐 지나갔다. 가게로 들어서면서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다가 결국은 또 어차피 다 아는 맛 수제버거집인가 싶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만약 맥도널드가 있었다면 거기 갔을지도 모르겠다.
버거는 만족스러웠다. 가격대도 적당했고 맛도 있었다. 맥주도 시원하고 좋았다. 매장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도 함께 팔고 있어서 메뉴가 나오는 동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버거307 제주함덕점 관련 정보는 여기에 있어요!
밤이라 문 닫은 상가는 많았지만 사람들은 협재보다 훨씬 많았다. 단체 관광객이 많아 보였다. 다들 파도 앞 모래사장에서 폭죽도 터트리며 늦은 밤에도 흥겹게 보내고 있었다.
여기는 부산이나 속초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프랜차이즈와 사각 건물과 아스팔트로 잘 조성된 해안가라 그런가...... 밤이라 바다 풍경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늘은 별도 하나 없이 검었고 온통 철석이는 소리만 울렸다. 그래도 기분상 들어간 해변은 가늘고 고운 모래로 발이 푹푹 빠져 버렸다.
한참 어둠 속의 바닷가를 구경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깨알같이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챙겨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근처의 꽤 큰 마트에 들러서 내일 아침에 먹을 빵과, 숙소에 들어가서 먹을 주전부리와, 또 제주에서만 파는 걸까 싶어 천혜향 막걸리와, 마침 눈에 띈 작은 사이즈의 한라산도 샀다. 한라산은 사면서도 먹지 않을 거 같긴 했지만 결국 다음날 내 짐이 되었다.
전날 먹다가 많이 남아 버리지도 못하고 다시 포장해서 들고 온 치킨을 볶고, 과자에 막걸리까지 펼쳐 들고는 티브이를 틀었다. 오랜만에 보는 티브이는 채널을 돌려도 돌려도 대체 뭐가 재밌는 프로인지 찾지도 못했다. 채널 선택권을 친구에게 넘기고 한참 식탁에 앉아 요즘 어떤 프로가 재밌는지, 지금 저 채널의 내용이 뭔지 전후 스토리까지 듣고, 먹고, 말을 이었다. 너무 편해서 그런가 내가 여행을 온 건지, 친구네 집에 놀러 온 건지, 아니면 그냥 하루 친구를 만난 건지...... 그냥 그렇게 편하게 하루가 갔다. 별다를 것 없는 날 같기도 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혼자서 주변 산책을 했다. 어제 봤던 바다를 다시 보기 위해서 도로를 건너 꽤 구석진 곳으로 들어갔다. 다니는 차 하나 없고 무서울 만큼 인적도 없는 적막한 도로와 바다, 멀리 펼쳐져 있는 검은 돌은 새벽인데도 을씨년스러운 면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니 왠지 더 무서워졌다. 괜히 영화의 무서운 장면을 연상하며 뛰면 저 사람을 더 자극할지도 몰라 빠른 걸음으로 돌아온 후 문을 잠그고 샤워를 했다. 어제 뜨거운 물이 많이 없어서 여자 두 명이 샤워를 하기는 부족할 거다는 설명을 들었다. 공영 샤워장과 화장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수건이나 옷들을 싸 들고 가기도 귀찮아 대충 씻고 나왔다. 나중에 들어간 친구는 역시나 뜨거운 물이 끊겨 찬물에 씻었다. 대충 씻고 아침을 먹고 짐을 다시 정리해서 밖으로 나왔다. 캠핑장 안에 있던 흔들 그네에 우리 둘이 앉아, 천천히 왔다 갔다 그네를 밀면서 멍 때리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오늘 하늘은 이렇게나 맑았다. 이제 뭘 하지 생각하다가 대충 근처에서 구경하고 놀자고 했다. 그렇게 제주에서의 네 번째 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제주를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저의 제주 여행기가 더 궁금하시면! 👇😁
8_ 셋째 날 시작! 서귀포 매일올레시장과 도자기 공방 체험
12_다시 제주공항에서_ 여행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일상으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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