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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여행이지/독서

왜 사람은 감정을 느끼는가? 느끼고 싶어하는가? _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_북리뷰

by 연습중인최 2022.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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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은 후에 주위를 돌아봤다. 슬며시 공간에 어둠이 내리고 밖에서는 자동차의 경적과 휴일 저녁의 부산한 이웃 소음이 들린다. 이제 겨울이 온 것이 분명한 서늘한 공기가 닿는 지금의 공간에서 나는 행복한가?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_북리뷰









알랭 드 보통은 제목처럼 건축이 인간의 생활과 감정에 끼치는 영향을 독자에게 상상력을 야기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가로수가 늘어져 있는 거리와 아이들의 외침 소리, 어른의 목소리, 먼 거리에서 건물 안까지도 어렴풋이 울려 퍼지는 생활의 자취와 해가 뜨고 지는 것과 함께 때때로 변하는 주변의 빛, 떠나고 들어옴에 남겨지는 환경의 흔적까지, 거기서 받는 심상이 쌓여 인간을 지배하는 감성이 되고 그것은 또다시 우리의 환경과 창작물에 변화를 불러온다. 그러므로 책에서 말하듯이 내가 거쳐 가는 건물과 환경, 사용하고 물건까지도 나를 지켜보고 있는 증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반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 또는 지금 하고 있는지, 미래는 또 어떠할지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지금의 내 환경을 둘러보는 게 가장 간단한 방법일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디자인을 할 때 사용자의 환경과 생활을 고려하는 것도 이것이 곧 사용자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집이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라고 한다.

집은 우리의 정체성을 수호하고 질서와 규율 규칙을 만들기도 하며 회복을 꿈꾸게 하고 아름다움으로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이 진지함, 도덕적 가치, 비용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며 이상을 추구하게 되고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을 스스로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건축의 과제라는 신념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그런 인간의 이상은 어디서 온 것인지 그것이 실체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관련자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양한 양식과 형태의 세상의 건축물과 조각, 사물을 통해 설명하며 이해를 돕는다.

아름다운 건축이란 무엇일까?

서양의 역사에서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것은 그리스인들이 만든 고전적인 건축과 동의어였다. 수백 년간 합의를 통한 표준을 따른 건축으로 도시는 통일성을 얻게 되었고 문화나 지역별 기후 등의 제약에 따라 지역적 동질성이 강해졌다. 이후 운송체계가 개선되고, 다양성을 찾는 새로운 고객이 등장하는 등의 요인 변화에 다른 시대와 대륙의 건축 양식에 호기심이 생기고 19세기에 이르러 서구 대부분의 나라에서 집을 지으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건축가들은 인도, 중국, 이집트, 이슬람 등 다양한 양식의 집을 지을 수 있고, 이 뿐만 아니라 이런 다양한 양식들의 조합도 한 건축물에서 보여줄 수 있다고 알린다. 이런 제한 없는 선택의 문제점은 완전한 혼돈에 다가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각적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런 원칙을 찾을 수 있을까? 거기에 새로운 유형의 엔지니어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산업혁명기에 지배적인 위치에 올라섰고 어떤 양식을 택하는 것이 최선인지 묻지 않고도 쇠와 강철, 유리와 콘크리트를 다루는 기술만으로 구조물을 척척 해치웠다. 엔지니어의 철학은 건축이라는 전문직이 이전에 대변하는 것과 모든 것이 대립하였다. “유용하고,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뭔가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일, 그것이 건축의 의무이다.” “건축이 단순한 집 짓기와 구별되는 것은 장식 때문이다.” 건축가들이 이에 맞서 주장한다. 그렇다면 위대한 건축의 본질은 결국 기능적으로 불필요한 것에 있는 것이다. 이런 충돌에서 몇몇은 엔지니어들이 건축을 구원하는 데 확실성이라는 핵심적인 해답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답을 기능에 대한 고려에서 찾으려 한다면 그 답은 논란 없이 기술적인 진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기계적인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용자의 심리적, 시각적 아름다움을 위한 관심은 포기한 건축가가 지은 집은 어떤 모양인가?

저자는 그 예로 빌라 사부아를 들었다. 사부아 부부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자신의 어린 아들을 위한 집을 의뢰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미래의 주택들은 금욕적이고 깨끗하며, 또한 규율과 검약이 장소를 지배하기를 원했다. 집의 기능을 “1. 더위, 추위, 비, 도둑, 호기심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켜주는 피난처, 2. 빛과 태양을 받아들이는 그릇 조리, 3. 일, 개인 생활에 적합한 몇 개의 작은 방”으로 정리했다. 이것에 충실히 건축된 빌라 사부아는 내부까지도 섬세하게 설계된 정밀 기계처럼 보인다. 시각언어는 오로지 산업적인 범주에서만 적용되어 있으며, 고객들에게 소유물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라고 권고했기에 가구도 거의 없다. 사부아 부인이 소파를 놓고 싶어 했지만 르 코르뷔지에는 반대한다. “오늘날 가정생활은 우리가 가구를 소유해야 한다는 개탄할 만한 관념 때문에 마비되고 있다. 이것을 근절하고 장비라는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현대인이 원하는 것은 수도사의 방이다. 조명과 난방이 잘되고 모퉁이에서 별을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부아 부부는 그 공간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사부아 부부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근거로 평평한 지붕을 고집했고 그 결과 이사한 지 일주일 만에 부부 아들의 침실로 지붕에서 물이 샜다. 그 양이 많아 아이는 폐렴이 걸려 일 년을 요양원에서 보냈다. 집안 곳곳에서 지붕에서 물이 새는 문제에 대한 사부야 부인의 불만에도 르 코르뷔지에는 고치겠다는 약속과 함께 전 세계의 건축 비평가들이 빌라 사부아의 평평한 지붕 설계를 얼마나 열광했는지 이야기했다. 그것이 류머티즘에 걸린 사부아 부부에게 위안은 되지 못했고, 법적 분쟁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제2차 대전으로 인해 아름답기는 하나 사람이 살기는 힘든 생활용 기계인 빌라 사부아는 설계 문제로 법정 책임을 지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모순된 점을 느끼게 한다.

왜 기술적인 측면에서 아름다움을 정당화하는 것일까? 과학적 용어를 통해 비난자를 막으려 하는 것이 비교적 쉬운 방법이기 때문일까? 르 코르뷔지에의 집에 대한 기능에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특성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인간을 통틀어 하나의 표준으로만 생각하고, 아름다움의 기준을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이해하려 한 오만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특히 사용자는-건축물에 어떤 일을 해줄 것이 아니라 어떤 분위기에 기여해 달라고 요구한다. 공간에 종교적이거나 전원적인 분위기를 바랄 수도 있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원할 수 있다 또 사교적이거나 가정적인 감정을 공간에 기대할 수도 있다.



인간은 공간에게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기를 바랄 수도 있고 흥분 시켜 주기를 원할 수도 있으며 조화의 느낌이나 억제의 느낌을 바랄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부차적이고 지극히 감정적이며 미학적, 표현적인 수준의 기능이 무시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공간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을 때처럼 불평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인지적 측면에는 우리가 어느 건축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단순히 미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좋다는 뜻 그 이상의 것이다. 아름답다는 감정은 사용자에게 좋은 생활이라는 우리의 관념이 물질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얻는다.


그렇다면 돌, 콘크리트와 같은 물질과 그 배치가 인간에게 감동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도록 연상하는 과정은?
우리는 전시된 조각을 감상하면서 때때로 어떤 종류의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조각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연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떤 사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그것이 살아있는 형태일 경우에 우리가 좋아했던 특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대상은 그들이 사랑하는 어느 것의 다른 모습인 셈이다. 인간은 형태나 질감 색깔 등에서 인간과 비슷한 면을 찾아내는 솜씨가 아주 뛰어나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선 하나에서도 많은 것을 느낀다. 건축이나 디자인 작품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기리며, 개개인이 행복을 바라보는 만큼이나 아름다움의 양식도 다양하다.



건축과 디자인을 통해 행복의 여러 측면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
인간은 항상 이상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일그러진 본성을 바로잡아 자신의 바람직한 모습을 실체로 묘사하여 가까이 두고 기억하게 해주기 위함이다.


정교하게 정의되는 건축의 미덕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직관적으로 사랑하는 환경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재창조할 가능성이 커진다. 질서는 거의 모든 건축의 매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인간이 질서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복잡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즉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진 상태에서 질서를 이루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인간은 질서가 주는 감정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섬세한 균형은 다양한 연상과 감정 사이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끌어내고 갈등에서 판결을 내리게 한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이 몇 가지 특질을 함께 조화해 이루는 결과라면 아름다움의 하위 범주인 우아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넘어선 난관에 힘든 모습을 강조하지 않는 겸손함을 보여줄 때 드러난다. 그저 수월하거나 단순해 보여선 안 되며 그것이 여간해서는 얻기 어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기술과 자연 두 양면에서 곤경을 헤치고 나온 것임을 우리 스스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건축은 독창이 아니라 합창단이라 표현할 수 있다. 여러 요소가 힘을 합쳐서 전체에 논리적 기여를 하도록 보이기 위해서는 일치된 관계가 필요하다.
좋은 건축이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에 만족하는지 이해하는 것, 자기의 감정을 아는 것에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자신의 욕망에 관해서 캐묻고,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논리적 설득력이 있는 설계도로 바꾸어 놓는 것 그런 스스로의 자기인식이 결합하여 자신도 알지 못했던 요구까지 충족시키는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건축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건축물에서 인간이 받는 감정과 왜 우리는 건축물에서 감정을 느끼는지, 느끼고 싶어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건축물에 이상적인 감정을 담기 위해 고민한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어떠한 점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성도 있겠지만- 다시 인간에서 영향을 미치고 상호 작용하여 인간도 건축물도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다. 그렇기에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도 시간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매번 다른 것이다.






나는 왜 전통적인 건축물과 일률적인 개발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장소를 보며 안정감을 느끼는 것인지,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몇몇 건물이나 흔히 트렌드라 말하는 레트로, 뉴트로 컨셉의 디자인에서는 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하고 때때로는 부정적인 감정까지 느끼게 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건축물을 보고 어떤 감정을 받는 데에는 그것의 형태와 주변의 자연이 어우러지는 통합적인 인상에서 우리가 인지하고 있던 대상을 연상하여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제품도 마찬가지로 기능적인 측면의 이용에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형태나 본질적인 쓰임 자체로도 인간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디자인 사고에 무엇이 더해질 수 있을까?

디자인할 제품과 타깃 사용자의 행동에 대한 연구 외에도 제품의 본질이 사용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를 이해하고, 사용자의 기억에 아름다움을 연상할 수 있게 연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설득력 있는 논리를 생각해 보는 것은 더 나은 디자인을 하는데 필요한 계획이라 생각했다.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사용자의 행복에 기여하는가? 나는 사용자가 제품을 통해 받는 감정을 고려하고 있었나? 그러지 못함에 반성하며 저자가 말하는 겸손한 자세로 나의 감정과 사용자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책을 다 읽은 후, 덮어 손에 쥐고 주위를 돌아봤다. 슬며시 공간에 어둠이 내리고 밖에서는 자동차의 경적과 휴일 저녁의 부산한 이웃 소음이 들린다. 이제 겨울이 온 것이 분명한 서늘한 공기가 닿는 지금의 공간에서 나는 행복한가? 내가 이 공간에 남기는 행복의 흔적은 무엇일까? 이 행복은 내 기억의 어느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 내가 남기는 흔적은 공간을 떠나도 그대로 남아 다시 채워진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 지금 내가 행복을 연상하게 되는 장소는 어떻게 나에게 그런 감정을 남기게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 건축물의 시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형태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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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의 2006년 신작. 건축물을, 인간이 보다 균형 잡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밑그림을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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