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인지와 공간 환경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가? 지금까지 내가 겪은 경험과 환경으로 인해 어떤 스키마가 축척되어 왔을까?
‘공간혁명_행복한 삶을 위한 공간 심리학’ / 세라 W. 골드헤이건 저 _ 북리뷰
『‘방이나 건물,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사물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장소의 어떤 특징이 우리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낼까? 또한 기억에 오래 남거나 금세 사라진다는 것의 특성은 무엇이고 사람이 눈물을 흘리거나 무엇에 냉정하게 반응하도록 하는 특성은 무엇일까?’』책 중에서
19세기 산업혁명과 대량생산체제가 되면서 디자인은 경제, 사회, 기술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변화해 왔다. 그전에는 디자인이라는 용어도 없었고 사회에 끼치는 영향도 미미했지만, 지금 시대에 ‘디자인’이라는 단어와 ‘디자인한다’는 행위는 광범위한 행위에서 범용적으로 통용되는 흔한 말이 된 것 같다. 그만큼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흔히 하는 친숙한 행동이 되어 직업으로서 디자인하는 사람에게는,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그것을 즐기는 지금 시대에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왜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서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UX’와 ‘인간중심 디자인’에 대해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고,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컨셉을 잡거나 시안을 설명하면서도 항상 그 점에 대한 어필은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서야 내가 과연 사용자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디자인 방향성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저 디자인 프로세스 중의 하나로 설득력을 가지는 시안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지금 계획한 디자인이 디자이너 개인의 의견보다 ‘사용자를 중심으로 생각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그리고 초기 디자인 방향성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참고한 각종 통계나 리서치가 사용자를 고려한 것이 맞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그런 수치상의 통계자료를 참고해 내린 결정은 사실 실제로 사용자를 고려한다고 하기에는 어설픈 면들이 많았고, 그저 회사에서 디자인에 대한 수치적인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심지어 사용자를 생각했다고 하기보다는 회사의 이익이나 경쟁사에 대응하기 위한 시안을 교묘히 수치 데이터를 이용해 사용자를 위한 것이라는 눈속임도 했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에는 사용자 즉 인간의 인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인간이 사고하고 행동하는데 무엇이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인간은 환경에 지극한 영향을 받고 또는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지 과학자 도널드 노먼은 ‘디자인심리학’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표면 인공물이라기보다 내적 인공물에 가까워, 겉만 보고서는 전부를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표면 표상으로 바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해야 한다. 즉, 생각을 말, 표정, 몸짓, 팬터마임, 동작, 스케치, 소리 –의중을 남에게 전달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감각적인 능력들을 이용하는 것-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을 중심으로 사용성을 생각하고 계획하기 위해서 디자이너는 이런 인간의 근원적인 인지와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인간의 마음을 잘 헤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라 W. 골드헤이건의 ‘공간혁명’은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환경을 경험하고, 디자인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 좋은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일어나서 다시 잠이 들기까지 모든 순간을 ‘건축된’ 횐경에 둘러싸여 살아가게 되는 인간이 환경에서 어떤 인지를 형성하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초반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내 주변과 사는 곳, 그리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모든 ‘건축된 환경’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디자인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인간은 어떤 방식을 환경을 경험하는지 관련 논문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사람들은 자원이 풍부한 국가나 도시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판단으로 만들어낸, 형편없는 디자인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살아간다. 그 결과의 대가를 모두가 치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발아래와 머리 위 환경이 결국 스스로가 겪게 되는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 이런 방식에서 사실 소비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반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디자인을 고르지만 이를 모르는 개발업자는 소비자들이 그런 물건을 원한다고 생각해 계속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낸다. 어떤 건물이 더 사용하기 좋을지, 실제로 어떤 건물이 사람들에게 더 필요하고 ‘좋아할지’ 한 걸음 물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는 일도 없다. 소비자는 일반적, 익숙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디자인이 매우 불편하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디자인을 고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책의 1장에서 이와 같은 글을 읽으며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소비자에게 구매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국 그들이 사회적, 또는 정서적, 인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지극히 일반적인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디자이너는 개발업자의 입장에서 경쟁사에 대응하기 위해서, 그리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서 불편하고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선택해 왔던 것과 비슷한 디자인을 하는 것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바우하우스에서 디자인했던 제품들이 100년이 지난 지금과도 별반 다르지 않은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은 이런 무한반복의 흐름에 갇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책에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인간이 경험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 틀이 필요하다고 하고있다. 인간의 뇌가 심리학자, 철학자, 디자이너들이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에 점점 주목받고 있는 인지과학과 인지심리학의 연구는 디자이너에게 흥미로운 분야이고 체화된 인지 패러다임은 인간의 경험과 디자인을 연결하는 분석적 근거로 사용할 수 있다.
『‘방이나 건물,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사물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까? 그리고 장소의 어떤 특징이 우리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낼까? 또한 기억에 오래 남거나 금세 사라진다는 것의 특성은 무엇이고 사람이 눈물을 흘리거나 무엇에 냉정하게 반응하도록 하는 특성은 무엇일까?’』
책에서 던지는 이런 의문은 이제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디자인은 인간에게 지극히 영향을 끼치고 디자인은 안전과 기능만 중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
책에서 건축 환경이 우리의 경험과 내면세계에서 수행하는 복잡한 역할을 표현할 은유로 맹시를 소개한다. 맹시의 사례를 통해서 건축환경을 파악할 때 시각만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기억작용과 하루 안에서의 리듬 변화에 따라서도 일시적으로 복잡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인지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인간의 인지에 관한 연구는 인지과학과 인지심리학 분야를 통해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순간에 받는 통합적인 인상, 이런 모든 인간 경험에 대한 상식이 이 연구를 통해 바뀌고 있고 이를 토대로 인지에 대한 새로운 설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과 '방식'에 대한 기본 틀을 구성하고 제공하는데 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고 한다. 인지란 마음과 신체 환경 세가지 요소가 결합해 만들어진 산물이다. 감각인상이나 보는 순간 지각할 수 있는 비언어적 인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은 경험을 마음적으로 구성한 연상 패턴인 스키마를 축적하고 이 축적된 스키마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감각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한다.
인간은 살아오면서 축적한 정보 창고를 이용해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과 그 안에 있는 대상을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재빠르게 찾고 해석하고 이해하며, 인간의 삶은 비의식적 인지로 지배된다. 환경은 우리의 인지에 축적되어 뇌 깊숙한 곳에 내적 외적 자극을 남기고 우리의 경험, 우리의 경험에 대한 기억은 본질적, 필연적으로 환경 속에 뿌리를 내린다.
건축 환경을 통해서 우리는 모습을 형성하고 우리가 이 세상을 신체적, 사회적, 인지적으로 경험해 나가는 방식을 결정하기도 하며, 더불어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바꾸는 과정에 깊숙히 관여하여 마음과 육체를 하나로 연결하고 인간의 인지적 자극을 이용해 행동을 유도한다.
우리의 마음과 신체의 구조 역량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 인간은 서로 다른 기후와 지형 녹지를 지닌 다양한 서식지와 생태계를 살아오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각기 다르게 진화했고 그 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환경적 특성과 삶의 방식에 맞게 감각과 성향이 발전했다.
인간의 신체와 마음은 장소의 지형적 특성과 관계없이 어떤 본질적 형상, 구조적 패턴, 지상의 재료와의 상호작용, 중력의 영향 등과 같이 자연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형태와 상호작용하며 발전했다. 그렇기에 축적된 스키마로 인해 사람들은 건물, 도시경관, 자연경관을 마주하면 빠른 핵심 파악을 통해 심상을 만들어낸다. 또한 재료와 질감 디테일을 통해 다양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표면 기반 신호'는 우리가 건물과 상호 감각적으로 온전히 관계하도록 만들며 제작 공정을 심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으로 물체를 이해하는 인간의 성향을 잘 이용하기 때문이다.
공간에 의해 우리의 내적 인지와 경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달라지며 같은 행동을 할 때조차 공간에 따라 인간은 다른 경험을 한다.
특정한 패턴을 보이는 환경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생각과 감정 행동이 달라진다. 이렇게 인간의 동일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환경으로 인해 기존에 축적되어진 인지적 요소에 의해 경험은 달라지므로 디자인을 함에 있어 사용성을 검토할 때는 그 범위를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인지에 대한 이해 외에도 사용성을 고려할 대상을 확실하게 선정하고 그에 따른 인지 연구와 행동에 대한 관찰이 디자인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 환경 경험 측면에서 활동 무대는 우리의 사회 세계를 구성한다.
우리가 해당 장소를 특정 활동을 하는 환경으로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축 환경은 ‘사람이 어떤 장소에 존재하게’ 만드는 데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
책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건축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은 흥미롭다. 건물과 거리 풍경 등은 모두 ‘활동 무대’로 인간의 생각과 타인과 관계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이렇게 공간이 인간에게 행동을 유도해 인간에게 축적된 스키마로 인해 인간은 공간의 목적을 특정한다. 여기서 특정된 인지로 인해 우리는 공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감정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집은 피난처 이상의 기능을 제공하고 온 가족 구성원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한자리에 모은다.
힘든 일이 있거나 긴 여행을 마친 후에도 결국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듯이 장소와 그 장소가 내포하는 상징적인 조직에 대한 우리의 소속감은 디자인을 이용해 강화하거나 높을 수 있으며 반대로 약화하거나 없앨 수도 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이제 조경과 도시 지역 건물 디자인에 관한 기준 지침을 마련하면 쉽게 피할 수 있는 실수를 예방하고 인간의 필요를 더 만족시키는 디자인을 장려하면서 행복도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의 경험은 놀라울 정도로 풍성하고 문화적 지리적 변동성도 크므로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볼 때 경험에 기반한 심미적 원칙만 따른다면 과하게 정형화된 디자인은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원칙은 디자이너를 자유롭게 하고 수많은 구조적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게 만드는 동시에 경험 디자인으로 이어지는 인간 중심 접근법을 유지하게 한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디자인 접근법은 인간의 인지 또는 행동의 원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제품이 가지는 행동반경을 생각하는 데 불과했다. 인간은 환경에 많은 지배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는 것을 지금과 같은 팬데믹을 겪으며 깨닫게 되었다.
디자인이 미적인 즐거움의 추구가 우선되어야 하는지, 기능성을 중시해야 하는지는 오래전부터 모든 관련된 사람들이 한 번쯤은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차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모호하고, 차이는 미미하다. 그리고 지금 세상에서 그런 차이를 나누고 디자인을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상에는 더 나은 조경과 경관 건물, 그리고 더 나은 디자인, 더 나은 사용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디자이너로서 그것을 충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인지에 대한 이해를 비롯해 디자인 환경이 인간 경험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계속해서 점검하여 점차 보완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보통 디자인을 디자인이 ‘좋은가’ 또는 ‘나쁜가’, 세련됐는가 조악한가, 실용적인가 화려한가 등으로 굉장히 좁은 측면에서 논의하고 평가했다. 그것은 디자인의 형태로서의 구분에 불과하며 결국 그것이 인간의 경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는 될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사용자가 이 디자인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가?’ ‘사용자의 경험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용성이 고려되었는가?’와 같은 광범위하고 어떻게 보면 모호해서 답을 찾기 어려운 이 질문의 해답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인지에 대한 지식에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책을 통해서 지금 내 주변의 공간은 살아오면서 쌓인 우리의 인지로 인해 형성된 결과물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사회적 정서적 ‘활동무대’로 활약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을 배웠다. 더 나아가 앞으로의 수행해야 하는 과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환경 변화를 인지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구조적인 디자인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자연의 본질을 깨닫고 이것이 인간의 인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기 위한 지속적인 인지심리학에 대한 관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디자이너로서 올바른 사용성과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인간의 인지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있고 ‘공간 혁명’은 인간의 인지와 공간 환경이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지, 내가 지금까지 겪은 경험과 환경으로 인해 어떤 스키마가 축척되어 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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