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 안에 '여행'에서 오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책에서 말하듯이 '목적지'가 아니라 '심리'다.
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 _북 리뷰(2)
기대와 두근거림을 가지고 도착한 여행지에서 막상 지저분한 환경과 피곤함과 다양한 감정에서 오는 실망감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 당장 내가 사는 곳의 지루함에, 방금 전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기억은 왜곡되어 여행의 아름다움만 남는다. 그리고 금방 다음 여행을 희망한다. 여행을 하는 이유를 단 몇 가지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나만 해도 금방 떠오르는 이유가 몇 가지나 된다. 단, 이것을 생각하자. 우리의 마음 안에 '여행'에서 오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책에서 말하듯이 '목적지'가 아니라 '심리'다. '여행'하는 심리는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우리가 삶을 통틀어 '여행하는 심리'를 가질 수만 있다면, 일상의 매 순간이 여행자의 마음일 것이다.
풍경
5.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 워즈워스의 도시에 대한 불만에는 매연, 혼잡, 가난, 추한 외관 등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맑은 공기 법안을 상정하고 빈민가를 정리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그의 비판에 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도시가 우리의 건강보다는 영혼에 미치는 영향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도시가 생명을 파괴하는 여러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비난했다. 사회 위계에서 우리의 지위에 대한 불안, 다른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질투, 낯선 사람들의 눈앞에서 빛을 발하고 싶은 욕망, 워즈위스의 주장에 따르면 도시 거주자들은 뚜렷한 관점이 없기 때문에 거리나 저녁 식탁에서 이야기되는 것에 귀를 곤두세운다고 한다. 그들은 먹고 살기가 편해도 자신에게 진정으로 부족하지도 않고 또 자신의 행복을 좌우하지도 않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런 혼잡하고 불안한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진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고립된 농가에서 사는 것이 오히려 유리했다. 워즈워스는 런던의 집에서 이렇게 썼다. “한가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 어떻게 이웃에 살면서도 서로 낯선 사람으로 살아갈까. 심지어 어떻게 서로의 이름도 모를까?”
- 왜일까? 어째서 폭포나 산 등 자연에 다가가게 되면 혼잡한 거리에 다가가는 것보다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경험할 가능성이 적어지는 것일까?
워즈워스는 자연이 우리로 하여금 삶에서, 그리고 서로에게서 “바람직하고 선한 모든 것”을 구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자연은 “올바른 이성의 이미지”로서 도시 생활에서 나타나는 비꼬인 충동들을 진정시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분적으로라도 워즈워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그 이전에 우리의 정체성에는 다소 순응성이 있다는 원칙,즉 우리가 함께 있는 사람 - 때로는 사물 - 에 따라서 변한다는 원칙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반면,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경쟁심이 생기고 질투가 일어난다. 따라서 A가 지위와 위계에 강박감을 가지고 있다면, 거의 눈치도 채지 못하는 상태에서 B까지 자신의 의미에 대해서 걱정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A의 농담으로 인해서 지금까지는 잠복해 있던 우스꽝스러운 느낌들이 슬며시 머리를 내밀 수도 있다. 그러나 B를 다른 환경에 가져다놓으면, 그의 관심은 새로운 상대에게 반응하며 미묘하게 변할 것이다.
“일상의 사물에 새로운 매력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관습에 따른 무관심에서 벗어나 우리 앞의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초자연적인 것을 만났을 때와 유사한 느낌을 맛보게 하는 것. 사실 우리 앞의 세계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보고이지만, 익숙함과 이기적인 염려 때문에 우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심장이 있어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 자연과의 접촉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해도, 우리는 그 효과가 지속되는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자연 속에서 보낸 사흘의 심리적 영향력이 몇 시간 이상 지속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하거나 수심에 잠겨 있을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6. 숭고함에 대하여
- 워즈워스는 우리의 영혼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감정들을 느끼기 위해서 풍경 속을 돌아다녀보라고 권했다. 나는 작아진 느낌을 위해서 사막으로 출발했다. 그런 황량하고 압도적인 공간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어떤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이 적절한 한단어로 표현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초가을 저녁 날빛이 희미해지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또는 빈터에서 전혀 움직임이 없는 물웅덩이와 마주쳤을 때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려면 이런저런 말들을 어색하게 잔뜩 쌓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절벽과 빙하, 밤하늘과 바위가 흩어진 사막을 보면서 느끼는 특정한 반응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단어가 18세기 초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는 느낌을 ‘숭고하다’고 부르게 되었고 또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도 어김없이 알아듣게 되었다.
- 새벽의 시나이 남부. 그렇다면 이 감정은 무엇일까? 이것은 4억 년 전에 만들어진 골짜기를 통해서 느끼는 감정, 2,300미터 높이의 화강암 산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 일련의 가파른 협곡의 벽에 표시된 수천 년의 침식 흔적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것들 옆에 있으면 인간은 그저 늦게 나타난 먼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숭고함은 우주의 힘, 나이, 크기 앞에서 인간의 약함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유쾌할 수도 있고, 심지어 사람을 도취시킬 수도 있다.
- 그런데 왜 기쁨일까? 왜 이런 작아지는 느낌을 찾게 될까? 그리고 심지어 그 안에서 기쁨을 찾을까? 왜 사람들 무리에 끼어 무거운 배낭을 메고 먼 길을 걷는 것일까? 그래서 정적만 있는 곳에 이르러, 도망자처럼 거대한 바위 아래의 빈약한 그늘에서 해를 피해야 할까? 한 가지 대답은 우리보다 강한 것이 모두 우리의 미움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의지에 도전하는 것은 분노와 원한을 자극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경외와 존경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장애물의 도전이 고귀하냐 아니면 너저분하고 무례하냐에 달려 있다.
- 우리가 넘을 수 없는 장애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만났을 때, 숭고한 풍경이 그 웅장함과 힘을 통해서 우리가 원한을 품거나 탄식하지 않고 그 사건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구약의 신이 알고 있었듯이, 자연 속에서 물리적으로 인간을 넘어서는 요소들-산, 땅의 띠, 사막-을 가리켜 보여주는 것이 위축된 인간의 기운을 북돋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숭고한 장소들은 부드럽게 우리를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예술
7.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
- 풍경은 추하지 않았지만, 몇 분 동안 정밀묘사를 한 뒤에도 나는 사람들이 그 풍경에 흔히 가져다붙이는 매력은 발견할 수 없었다. 올리브 나무들은 지지러진 듯하여 숲보다는 덤불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밀밭은 잉글랜드 남동부의 평평하고 단조로운 평야를 생각나게 했다. 그곳은 내가 어린시절 학교에 다니며 불행을 느꼈던 곳이었다. 헛간, 언덕의 석회암, 한 무리의 사이프러스 발치에 자라는 양귀비까지 눈여겨볼 힘은 없었다.
- 우리가 어떤 장소를 그냥 지나치는 것은 이렇다 할 자극이 없어서 그곳이 제대로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어떤 불행한, 그러나 뜬금없는 연상이 일어나 등을 돌리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와 올리브 나무의 관계도 그 잎의 은빛 광택이나 가지의 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달라질 수 있다.
- 어쩌면 어떤 장면에서 찾아내야 할 것을 파악하는 감각을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각 예술을 공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예술 작품들은 사실상 우리에게 “프로방스의 하늘을 보라, 밀을 다시 생각해보라, 올리브 나무를 제대로 평가하라”고 말해주는 아주 섬세한 도구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나는 반 고흐의 작품에 묘사된 모습을 살피기 전에는 프로방스에 별로 감탄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편하지만 사실이었다.
- 우리가 감탄했던 그림이 시야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그 그림에서 묘사된 장소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하는 능력은 예술에서 현실 세계로 옮겨질 수 있다. 처음에는 캔버스 위에서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발견하지만, 나중에는 캔버스가 그려진 장소에서 그런 요소들을 환영하게 된다.
- 예술은 예술가들에게만 있는 독특한 정서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예술은 단지 열광에 기여하고, 우리가 이전에는 모호하게만 또는 성급하게만 경험한 감정들을 좀 더 의식하도록 안내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내년에 여행할 곳을 선택하는 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8.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
-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결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곳에서만 자주 나타나거나, 계절과 빛과 날씨가 보기 드물게 조화를 이룬 결과로 나타나곤 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소유할 것인가?
카메라가 하나의 방법이다. 사진을 찍으면 어떤 장소의 아름다움을 보고 촉발된 근질근질한 소유욕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귀중한 장면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은 셔터를 누를 때마다 줄어든다. 아니면 아예 우리 자신을 물리적으로 아름다운 장소에 박아놓을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이 그 장소 안에 좀더 확실하게 존재한다면, 그 장소도 우리 안에 좀더 확실하게 존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러스킨은 아름다움과 그 소유에 대한 관심을 통해서 다섯 가지 핵심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첫째, 아름다움은 심리적인 동시에 시각적으로 정신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복잡한 요인들의 결과물이다. 둘째,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타고난 성향이 있다. 셋째, 이런 소유에 대한 욕망에는 저급한 표현들이 많다.(기념품이나 양탄자를 산다거나, 자기 이름을 기둥에 새긴다거나,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를 포함하여). 넷째,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 러스킨은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라고 권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그의 말로 하자면 “말로 그려야”한다고 생각했다. 생전에 그가 데생으로 큰 존경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것, 그리고 그가 빅토리아 여왕 시대 말기에 명성을 펼치게 된 것은 그의 ‘말 그림’ 때문이었다.
귀환
9. 습관에 대하여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팡세] 단장 136)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 여행의 심리를 우리 자신이 사는 곳에 적용할 수 있다면, 이런 곳들도 홈볼트가 찾아갔던 남아메리카의 높은산 고개나 나비가 가득한 밀림만큼이나 흥미로운 곳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여행하는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 그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적인 태도가 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게 된다.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고 간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우리 때문에 짜증이 난다. 우리가 교통 섬이나 좁은 도로에 서서 그 사람들에게는 눈여겨볼 것이 없는 사소한 것들에 감탄을 하기 때문이다.
- 나는 이제 드 메스트르를 좇아 습관화의 과정을 역전시켜, 내가 그동안 발견했던 용도에서 주위 환경을 분리시키려고 했다. 나는 억지로 이상한 종류의 정신적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없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서서히 여행의 보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도여행이지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름'이 행복한 _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_ 북 리뷰 (4) | 2022.08.04 |
---|---|
'디자인 민주화'시대의 디자인 방향성과 디자이너의 역할은?_디자인의 가치_ 북 리뷰 (2) | 2022.08.03 |
왜 사람은 '여행'에 의미를 두는 것일까? _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1) (0) | 2022.07.28 |
성공으로 가기 위한 인생게임에서 필요한 기술은?_호스 센스 Horse Sense _ 북리뷰_Part 4. (0) | 2022.07.25 |
성공으로 가기 위해서 어떻게 말에 올라탈 것인가?_호스 센스 Horse Sense _ 북리뷰_Part 3. (2) | 2022.07.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