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무는 자리에서도 책이 알아서 가져다 바치는 '유순한 상상력'과 '광경'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여행의 기술 / 알랭 드 보통 _북 리뷰(1)
왜 사람들은 '여행'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는가? 왜 보편적으로 그 단어만 들어도 행복감이나 해방감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될까? 많은 여행과 관련된 서적이 있지만, 목적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왜 여행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집어 들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어렵다. 어려운 단어로 쓰인 글은 아닌 것 같은데, 꼬집어 적절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문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이렇게 읽고 나서 문장을 되새길 겸 적으면서 한번 더 봐야지, 이제야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된다. (나만 그럴지도 모른다... 내 이해력 부족...😂) 책은 크게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 다섯 파트로 나뉘어, 그 안에서도 여행의 여정과 감정에 대해 다룬다. 책 한 권이 마치 여행을 기대하고, 준비하고, 도착해서는 실망과 흥분과 깨달음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와서 현실에 실망도 하는 일련의 여행 과정과도 같았다. 책 초반에 본 데제생트 공작이 했다는 말과 같이 의자에 앉아서도 아주 멋진 여행을 한 기분이다. 거기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낯선 장소에 대한 피곤함과 새로운 실망감도 없었다. 내가 머무는 자리에서도 책이 알아서 가져다 바치는 '유순한 상상력'과 '광경'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왜 여행을 원하는 걸까? 왜 사람들은 지금의 안락함을 버리고, 새로운 실망만 가득할 지저분하고 피곤한 일탈을 담아두고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책을 통해 답을 찾고자 한다.
출발_
1. 기대에 대하여
-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을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철학적인 문제들, 즉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사고를 요구하는 쟁점들이 제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그러나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 여행을 연구하게 되면 그리스 철학자들이 에우다이모니아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던 것, 즉 “인간적 번영”을 이해하는데에도 대단치는 않지만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자에 앉아서도 아주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데 구태여 직접 다닐 필요가 뭐가 있는가? 런던의 냄새, 날씨, 시민, 음식, 심지어 나이프와 포크까지 다 주위에 있으니, 나는 이미 런던에 와 있는 것 아닌가? 거기 가서 새로운 실망감 외에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 나는 아침의 흥분을 느끼며 허공을 질주하는 새 몇마리를 보기는 했지만, 이들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어울리지도 않고 관계도 없는 다른 수많은 요소들 때문에 곧 시들해졌다. 그중에는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얻은 목감기, 한 동료에게 내가 휴가를 떠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걱정, 양쪽 관자놀이를 눌러오는 압박감, 점차 강해지는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 등이 있었다. 중요하지만 그때까지는 간과해왔던 사실 또한 차츰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이 섬에 데려왔다는 것이다.
- 우리는 지속적인 만족을 기대하지만,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또는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은 사실 짧다. 적어도 의식적인 정신에게는 우연한 현상으로 보일 것이다. 이 짧은 시간에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수용하게 된다. 이 시간에는 모처럼 과거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들이 형성되고, 불안이 완화된다. 그러나 이 상태는 10분 이상 지속 되는 일이 드물다.
- 데제생트라면 금방 알아챘을 또 하나의 역설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장소에 가장 온전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그곳에 가 있어야만 한다는 추가의 부담에 직면하지 않을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열대의 섬에 와서 하늘의 상태와 숙소의 겉모습이 그 자체로는 결코 우리의 기쁨을 보장해주지도 못하고, 반대로 우리를 비참한 기분으로 내몰지도 못한다는 것을 배운다.
- 나는 데저생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냥 집에 눌러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사의 비행 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적이 몇 번은 있었다.
2.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꿔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장치 앞에서 앓고 싶어하며,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는 부끄러움 없이 자신도 그런 환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인정했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
나는 집에서 우울할 때면 기차나 공항 버스를 타고 히드로 공항으로 가서, 2번 터미널에 있는 전망대나 북쪽 활주로변에 있는 르네상스 호텔의 꼭대기 층에서 끊임없이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을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 오후 3시, 권태와 절망이 위협적으로 몰려오는 시간에 늘 어딘가로, 보들레르가 말하는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이륙하는 비행기가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 기분의 갈라진 틈들을 메우는 것은 즐거운 일 아닌가. 트리에스테, 취리히, 파리.
-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 우리가 여행의 과정에서 부여하는 가치, 목적지와 관계없는 방랑에 부여하는 가치는 영국의 문학 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주장하듯이, 약 200년 전에 이루어진 감수성의 폭넓은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 변화를 통해서 외부인은 내부인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8세기 말부터는 공동체의 관행이 아니라 방랑자가 되는 것에서 동료 의식이 생긴다. 그 결과 본질적인 고립과 침묵과 외로움이 일반적인 사회의 엄격함, 차가운 금욕, 이기적인 편안함에 맞서서 자연과 공동체의 운반자가 된다. - 레이먼드 윌리엄스, [시골과 도시]
우리가 휴게소와 모텔에서 시를 발견한다면, 공항이나 열차에 끌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건축학적인 불안전함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그 유별나게 화려한 색깔과 피로한 조명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립된 장소에서는 이미 터가 잡힌 일반적인 세상의 이기적인 편안함이나 습관이나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은연중에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기_
3.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 내가 스히폴 공항의 안내판이 이국적이라고 느낀 것은 이 안내판으로부터 그것을 만든 나라, 공항의 아위트강 너머에 있는 나라가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영국보다 내 기질과 관심에 더 맞을 것이라는 암시, 모호하지만 강렬한 암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 왜 다른 나라에서 현관문 같은 작은 것에 유혹을 느낄까? 왜 전차가 있고 사람들이 집에 커튼을 달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장소에 사랑을 느낄까? 그런 작고 외국적인 요소들이 강렬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 터무니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반응 양식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의 감정이 상대가 빵에 버터를 바르는 방식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또 상대가 구두를 고르는 취향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일에 영향을 받는다고 우리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자잘한 것들도 그 속에는 풍부한 의미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 이국적이라는 말을 좀더 일시적이고 사소한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외국에서 만나는 장소의 매력은 새로움과 변화라는 단순한 관념으로부터 나온다. 예를 들어 고향이라면 말이 있을 만한 곳에 낙타가 있다거나, 고향이라면 기둥을 세운 아파트 건물이 있을 만한 곳에 장식이 없는 아파트 건물이 있다거나. 그러나 좀더 심오한 기쁨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외국의 요소들이 새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더 충실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귀중하게 생각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고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는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4. 호기심에 대하여
- 호기심의 수준이 높다는 것_ 사실을 찾아나선 여행자는 구경을 하려는 목적을 가진 여행자에 비해서 여러 가지로 유리한 조건에 있다. 사실은 쓸모가 있다. 쓸모에는 그것을 인정하는 청중이 따른다.
- 호기심은 몇 가지 크게 뭉뚱그려진 질문들로 이루어진 중추로부터 밖으로, 때로는 아주 먼 곳에까지 확장되는 작은 질문들의 사슬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왜 선과 악이 있을까?” “자연은 어떻게 움직일까?” “나는 왜 나일까?” 상황과 기질이 허락한다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질문들을 중심에 놓고 살아간다. 우리의 호기심은 세계의 점점 더 많은 부분을 포괄하다가, 마침내 어느 지점에서는 어떤 것에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오묘한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 뭉뚱그려진 커다란 질문들은 언뜻 보기에는 남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질문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산 속에서 파리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16세기 궁전의 벽에 그려진 특정한 벽화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실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
'이것도여행이지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자인 민주화'시대의 디자인 방향성과 디자이너의 역할은?_디자인의 가치_ 북 리뷰 (2) | 2022.08.03 |
---|---|
'여행'하는 심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_ 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통(2) (2) | 2022.07.28 |
성공으로 가기 위한 인생게임에서 필요한 기술은?_호스 센스 Horse Sense _ 북리뷰_Part 4. (0) | 2022.07.25 |
성공으로 가기 위해서 어떻게 말에 올라탈 것인가?_호스 센스 Horse Sense _ 북리뷰_Part 3. (2) | 2022.07.19 |
성공으로 가기 위해서 무엇을 이용할 것인가?_호스 센스 Horse Sense _ 북리뷰_Part 2. (0) | 2022.07.18 |
댓글